경제 대공황과 그 원인 그리고 제 2차 세계 대전

경제 대공황이라는 단어는 요즘 시대에도 많이 쓰는 표현입니다. 세계 경제가 크게 주춤할 때 빗대어 쓰이곤 합니다. 경제 대공황이 무엇인지 발생한 원인과 배경, 그로 인한 영향, 경제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대책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흔히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경제 대공황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충격을 전세계에 끼친 사건입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관련된 블로그 내 포스팅도 있으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 한은 기준금리 변동 추이로 보는 세계 경제 사건 1편

 

경제 대공황을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과 원인, 그 영향으로 인해 나타난 사건, 해결하기 위해 시도한 대책을 이해해야 합니다. 요즘 세계 경제는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 또한 좋지 않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통해 현재를 바라봐야 할 때 입니다.

경제 대공황이란?

 

경제 대공황

 

경제 대공황은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을 시작으로 미국의 주식 시장이 크게 무너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 된 이 사건은 이후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디프레션을 불러온 사건입니다. 디프레션(Depression)이란 고용, 임금, 물가의 하락을 동반한 경기 침체를 의미합니다.

배경

경제 대공황의 배경을 순차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1.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성장한 미국

미국은 제 1차 세계 대전 직후 황폐화 된 유럽에 군수품 물자, 식량 등을 공급하며 1920년대 엄청난 경제 호황을 이루게 됩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현했으며 호화로운 생활과 사치스러운 파티 등이 나오는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2. 주식의 열풍과 산업 전반에서 일어난 붕괴

급속도로 성장한 미국은 주식 시장에도 호황이 불며 꾸준히 성장하며 주식 시장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미국이 성장 했던 원동력인 농업, 군수 산업, 광업 등은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수요가 줄며 그로 인해 산업 기반이 붕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주식에만 매진하며 전반적으로 산업에 과잉 공급이 일어나게 되며 점차 미국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3. 과잉 공급과 산업의 붕괴로 인한 디프레션

과잉 공급으로 인한 영향은 실업률 증가, 기업 도산, 생산량 감축 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주식 시장도 크게 흔들리며 1929년 9월부터 폭락하여 10월 24일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 거래소에서 주식을 파려는 사람들이 몰렸고 주식의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며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리게 되는 대공황의 시작이었습니다.

원인

경제 대공항의 원인은 다른 경제적 사건과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3가지만 다뤄보겠습니다.

  • 공급 과잉을 따라가지 못한 소비력, 과도한 부의 집중
  • 산업 전반에서 나타난 붕괴와 대비되는 주식 시장의 과열
  • 미국 내 공황으로 인한 해외 투자 자금 회수

공급 과잉을 따라가지 못한 소비력, 과도한 부의 집중

당시 미국은 극히 소수에게 부의 집중이 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과잉 공급을 해소 할만한 소비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상위 10%가 미국의 부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비력을 담당하던 대부분의 노동자소득이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과잉 공급을 해소하지 못하자 기업은 일자리를 줄이고, 도산하는 기업과 은행이 증가하자 주식 시장 마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경제 대공황 당시 부의집중

산업 전반에서 나타난 붕괴와 대비되는 주식 시장의 과열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성장을 주도하던 산업들이 전쟁이 끝나면서 유럽 내의 수요가 줄자 미국의 산업 또한 불황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와 대비되어 주식 시작은 점점 과열되었고 기반 산업이 흔들리면서 주식 시장으로 쏠린 자금들은 순식간에 폭락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내 공황으로 인한 해외 투자 자금 회수

경기가 호황을 맞으면 자연스럽게 투자 비중이 높아집니다. 미국은 호황을 맞으며 전세계에 투자 자금을 뿌렸고 결국 대공황을 맞이하자 해외에 뿌렸던 투자 자금을 회수했습니다. 이 과정이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계가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에 주춤하면서 관세를 도입하며 자유 무역을 철폐하고 자국 보호 무역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 되었습니다.

경제 대공황 당시 무역급감액

대책

후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루즈벨트 정부는 뉴딜정책경제 대공황의 대책으로 내놓으며 실행했습니다. 뉴딜정책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공공 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고 당시 25% 가까운 실업률을 해소하여 소비력을 바탕으로 경제를 다시 굴리겠다는 목표였습니다. 뉴딜정책과 더불어 루즈벨트 정부는 시장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제도, 소비력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법과 제도 등을 만들었고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는 대책으로 실행했습니다. 하지만 뉴딜정책으로 경제 대공황을 극복했다기보다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다시 한 번 군수 산업으로 극복한 것이라는 현대의 관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뉴딜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포스팅은 추후에 따로 마련하겠습니다.

영향

경제 대공황 이후로 세계 경제는 흔들렸고 민주주의 체계를 기반으로 하던 국가들 중에는 파시즘, 독재,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했었고 그 중 히틀러의 나치당이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결론

경제 대공황은 1929년 미국에서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여 전세계로 번지며 세계 각국의 사회, 정치적 분야로 확장되며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경제라는 분야는 때로는 인간을 윤택하게도 만들지만 참혹하게도 만드는 양날의 검이라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버튼을 이용하여 위키피디아 경제 대공황으로 이동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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